큐브의 역사 -발명과 확산

먼저 큐브의 역사를 말할 때에는 이 넷을 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순서대로 토니 피셔, 우베 메퍼트, 에르뇌 루빅 그리고 오스카 반 디펜터죠.

발명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

먼저 미국의 래리 니콜스라는 사람을 얘기합니다.

평소 15퍼즐을 즐겨하던 래리 니콜스는 퍼즐이라는 것이 굳이 2차원에서만 얽매여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각 조각들을 면에서 입체로 만들어 3차원으로 확장시킨다면, 정확히는 정육면체로 만든다면 15퍼즐과 같이 한 칸의 공간을 비워둘 필요도 없고 형태가 완전히 대칭적인 멋진 퍼즐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자석구조를 이용한 2*2*2 큐브를 처음 만들었고, 1970년 미국 특허를 냅니다. 그리고 아이디얼 토이를 비롯한 다양한 장난감 제조사와 접촉을 했지만, 모조리 거절당합니다.

래리의 특허

아이디얼 토이는 3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1. 퍼즐을 맞추기 너무 어렵다.
  2. 이미 다른 두 종류의 정육면체 퍼즐이 시장에 존재한다(소마큐브, 인스턴트 인새너티).
  3. 자석으로 인해 제작 단가가 상승하고, 퍼즐을 맞출 때 속임수를 쓰기 쉽다.

1970년, 영국의 프랭크 폭스 또한 같은 시기에 특허를 냅니다.

프랭크 폭스의 특허

프랭크 폭스는 레일 구조를 이용한 물체를 고안했지만 목적이 퍼즐이 아니라 틱택토를 하는 기구로 사용하고자 했지요. 구조 또한 여러번 돌려 면을 맞추는 용도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과대학의 루빅 에르뇌(Rubik Ernő)는 학생들에게 입방체에 관련된 문제를 내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정육면체를 쪼개고, 그것들을 회전시키되 계속 응집시키는 것을 생각했죠. 나무에 고무 밴드를 붙이는것에서 시작해서 축 구조를 고안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큐브를 발명했습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죠.

큐브의 확산

루빅은 1975년에 헝가리에서 특허를 받고, 1977년에는 헝가리의 폴리테크니카라는 회사에서 최초로 5천개가 생산되었습니다.

전 세계에 단 5천 개뿐인 큐브의 첫 공산품 버전.

1978년, 헝가리의 컴퓨터 사업가 티보르 락지(Tibor Laczi)는 사업차 부다페스트를 방문했고 한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그 카페에서 락지는 웨이터가 큐브를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호기심을 표합니다. 하지만 웨이터는 큐브가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며 1달러에 판매하였죠. 수학 애호가였던 락지는 이 장난감의 잠재력을 알아채고 수소문을 해 루빅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루빅은 락지에게 ‘이 퍼즐 3만개를 판매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고 락지는 ‘고작 3만 개밖에 못 팔거면 애초에 만져보지도 않았다’고 답합니다.

바로 다음날, 락지는 국영무역회사 Konsumex를 방문하여 서양 국가들에 이 장난감을 팔고자 허가를 요청했고 생산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 퍼즐은 뉘른베르크 국제 완구 박람회에 출품되었으나 인기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뉘른베르크 국제 완구 박람회

당초 Konsumex는 10000개 분량의 대량생산을 하고자 했으나 절반을 취소시키고 락지에게 그 장난감은 형편없었다며 비웃으며 연락했습니다. 락지는 ‘그들은 큐브를 다른 수백개의 장난감들과 같이 그냥 포장해서 선반에 두었다. 하지만 부스에서 일하는 사람의 책임도 아니었고 박람회의 책임도 아니었다. 그들 또한 이것이 뭐하는 물건인지 몰랐을 뿐이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래서 락지는 본인이 직접 박람회의 해당 부스에 가서 시연하며 판매를 하고싶었으나 그건 공식적인 출품자(국영무역회사 측)만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관람객의 신분으로 박람회가 진행되는 곳 주변을 거닐면서 큐브를 돌리며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영국의 장난감 전문가 톰 크레머(Tom Kremer)를 만났고 극찬을 받은 뒤 아이디얼 토이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아이디얼 토이는 Konsumex에게 100만달러를 선불로 주고 해외 판매 독점권을 얻게 됩니다.

좌(톰 크레머), 우(에르뇌 루빅)

헝가리에서는 매직 큐브라는 이름으로 생산이 되었지만 그 때 당시에는 외국 특허를 얻지 못했습니다(외국 특허를 내려면 최초 출원 후 1년 이내에 출원해야 함). 그래서 큐브의 디자인을 저작권으로 보호할 수 없었던 아이디얼 토이는 적어도 저작권이 있는 명칭을 원했죠. 더군다나 매직이라는 이름이 마녀의 마법을 예상시킨다고 하여 더욱 바꾸길 원했다고 합니다. 결국 루빅의 정육면체(Rubik’s Cube)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됩니다.

아이디얼 토이의 로고를 새긴 루빅스 큐브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다양한 버전이 생산됨

아이디얼 토이는 1980년에 큐브를 450만개 판매하고 1981년에는 2천만개를 판매합니다. 헝가리에서 외화를 가장 많이 벌어다주는 효자 상품이 되었고 루빅 에르뇌가 헝가리에서 제일가는 부자라는 소문이 돌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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